나에게는 명확한 이미지가 있었다.
스타벅스를 한손에 쥐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는. 커피는 톨사이즈 이상이어야 하며 하이힐은 또각또각 소리가 나야했다.
이 이미지는 마치 내가 월가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이 되는것과 같은 환상을 일으켰다. 이 이미지는 나를 금융권에 취업하게 이끌었고 취업후 여의도 본사에 지원하게 했다. 우리나라 월가는 여의도 또는 테란로 정도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여의도에서 근무하는 동안 웃음보다는 눈물이 더 많았다. 본사에는 다 있다는 텃새도 경험해야 했고 과중한 업무에 짓눌려 화장실에서 터져나오는 울음을 참은적도 한두번이 아니다. 하지만 아마 마음속 깊은곳에 이 이미지가 있었고, 이미지는 나는 멋진 커리어우먼이고 커리어우먼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설득했다.
나는 근무하는 빌딩근처에 스타벅스가 없음을 항상 아쉬워했다. 대신 내손에는 빌딩에서 파는 모닝커피가 들려있었다. 여의도에 출근한지 십년이 다 되어가는 어느날 옆건물에 스타벅스가 생겼다. 드디어..그 건물에서 스타벅스를 들고 출근하는 그날, 나는 내가 가지고 있던 구두 중 가장 멋있는 하이힐을 신었다. 또각또각또각. 손에는 꿈에 그리던 스타벅스. 승진한 날만큼 기뻤다. 이제야 그 이미지에 내 얼굴이 들어갔으니까.
가만히 생각해보면 오랜시간 나를 이끌었던 이 이미지는 어디에서 온것인지 알 길이없다. 어린시절 책받침에서 본것인지 언젠가 미국드라마에서 본 여성의 모습인지. 마치 신기루와같이 스타벅스를 들고 하이힐을 신고 출근하던날 그 이미지는 내 머리속에서 사라졌다. 출처 불명확한 환상에 이끌려 오랜시간 수고했다고 스스로를 다독거렸다. 하지만 피식 헛웃음이 나오는것은 어쩔 수 없었다. 정체모를 이미지에 나를 긴 세월 맡겼다니..
그러나 그 이미지가 사라진 이후 다시 한번 나는 낯선 여성에게서 새로운 이미지를 보았고 그 이미지는 내 마음속에 꽂히고 말았다.
다음글에서는 낯선 여성의 이미지를 공유하고자 한다. 단, 이번에는 나도 모르게 홀리지 말고 가고 싶은 길인지 심사숙고해 볼테다. 나의 십년은 소중하고도 소중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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