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엄마의 웃음과 눈물 스토리

팔학군에서 대입 실패를 피하기위해 반드시 조심해야는것

우선, 이야기에 들어가기에 앞서 나는 나의 모교를 좋아한다. 다만, 좋은 학군에서 말하는 소위  SKY가 아니다. 대입에서의 성공은 통상 SKY로 규정하기에 나는 나의 대입의 결과를 실패로 규정했다.

======================================================

팔학군에서 좋은 학원을 다니며 매번 백미터 달리기처럼 매진했던 아이

 

학창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는 초등학교때부터 일명 내노라하는 학습지, 학원을 거치지 않은것이 거의 없었다. 재능교육, 윤선생 영어교실, 원더랜드, 과외, 소수반 학원, 대형 학원, 메가스터디 등 90년대에 유명하다는 학원은 모두 다녔다. 게다가 나는 욕심도 있었던 터라 매번 학교의 시험은 물론이거니와 학원 시험까지 혼심의 힘을 다해서 준비했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학원 숙제량는 나에게 항상 버거웠다. 아무라 열심히 하려 노력해 봐도 모두 해내기는 역부족 이었다. 내용이 어려웠던게 아니라 내가 소화할 수 있는양이 아니었다. 그래서 학원에 가는 셔틀에서 그렇게도 막판 스퍼트로 영어 단어를 외웠다. 그날의 쪽지시험을 대비해서.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영어

단어 암기 부족은 대입에서 나의 발목을 잡았고, 기대하던 대학 수시에서 영어때문에 미끄러지고 말았다. 그렇게도 쫒기며 외웠던 단어들은 휘발성 지식으로 내 머리에서 날아가 버렸던 것이다.

 

책을 안읽은건 아니냐고? 천만에. 읽는것도 좋아했고 '책을 많이 읽어야 좋다'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에 틈이 생기면 책을 보려 노렸했다. 하지만 이 또한 아이러니 하게도 고등학교때 언어영역에서 나는 매번 시간에 쫒겼다. 막판 3개의 지문은 혼비백산이 되어 손이 덜덜 떨릴 지경이었다. 수능을 치던 그날 조차.

 

혹시 머리가 안좋은건 아니냐고? 글쎄. 그렇기에 초등학교 저학년 검사때 IQ는 135였던것으로 기억한다. 물론 영재는 아니지만 그래도 머리가 '안'좋은 수치는 아닌것으로 안다.

 

그럼 왜? 대입에서 실패했어?

나도 오랫동안 생각해봤다. 이제 나의 나이가 40이 넘었으니 거의 20년동안 곱씹어 보았던 난제였고 나의 마음속 깊이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간 질문이기도 하다. 구지 말할 이유도 없지만, 이렇게 글을 쓰는 이유는 이젠 한 아이의 엄마로서 나의 경험을 토대로 나보다 더 잘 아이를 키우고 싶기 때문이다.

 

1. 학원을 줄이고 배운것을 복습했다면 오히려 높은 성취를 했을 수 있었을것 같다.

하루 하루 다 하기 어려웠던 숙제를 쳐내듯 학원을 다니는것 보단, 중학교때까지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더라면 오히려 좋았을것 같다. 속도가 살짝 느릴 수 있긴 하지만 학원량을 줄이고 충분히 복습을 한 후 아주 잠시 기다림이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나의 학습을 '충분히' 배우고 즐기고 완성하고 갈 수 있었다면, 그리고 그것들을 반복할 수 있었다면..그것들은 오히려 나의 머리에 더 오래 깊이 남지 않았을까 한다.

 

떨어지는 빗물을 양동이에 받는 미션을 전속력으로 빠르게 다섯바퀴를 돌아 흘리며 담은 양과 두바퀴를 천천히 돌지만 여유롭게 덜 흘리며 도는 양..아마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지만 정신적 육체적으론 후자가 더 나중에 높이 멀리 뛸 수 있지 않을까.

 

2. 읽고 쓰는 시간이 더 있었으면 좋았을것

책을 읽더라도 그냥 읽는것이 아니라 내용을 파악했는지를 확인하고 이해하는 과정을 많이 가졌으면 좋았을것같다. 실제로 몇번 써보지 않은 독후감이라는것을 정말 써봤더라면 어땠을까. 그럼 내용을 요약해 보고 그 내용에 대한 나의 생각을 정리하는 훈련을 많이 해 보았을텐데. 그게 바로 고등때의 다량의 학습을 소화할 수 있는 가장 튼튼하고 확실한 무기가 되어 주었을텐데 말이다.

 

3. 나의 목표점이 '대입'이라는 생각을 명확하게 했어야 했다.

바보같게도 '대입'이라는 최종 지향점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했던거 같다. 그래서 하루 하루 주어지는 타인(학교/ 학원)의 기대와 목표에 부응하기 위해 바빴다. 90년대에 대입을 잘 성취하기 위해서는 수능을 잘 보았어야 한다. 하지만 매일 평가되는 내신을 잘 하기 위해서 바빴고, 그 단기 목표의 성취에 기뻐했다. 그건 내가 가야하는 최종목표와는 결이 다른 작은 목표임에도 말이다. 이후 나는 살면서 내가 나아가야 하는 목표를 아주 명확히 하려는 습관이 생겼다. 다시는 누구에게 속았는지도 모르는 속임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4. 혹시 공부잘하는 초등학교 학생이 교과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는것을 목격했다면? 공부 방법을 반드시 고쳐주어야 한다.

맞다. 내가 그랬다. 모든 과목의 내용을 처음부터 끝까지 외우고 시험을 보았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잘 볼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방법은 고등학교로 넘아가자 방대해진 공부량에서는 통하지 않는 전략이었고 나는 그 문제를 해결할 용기가 없었다. 모두 외우는것이 아니라 중요한 부분만 발췌하여 암기하고 훈련하는 연습이 필요한데, 모든 시험이 중요한 상황에서 갑자기 공부방법을 스스로 바꾸는건 거의 다시 태어나는것만큼이나 두려운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럼, 너는 어떻게 너의 아이를 키우고 싶은데?

어떻게 키우고 싶냐고? 휘둘리지 않고 명확하게 내가 키우고자하는 지향점을 바라보며 키우고 싶다. 그 지향점이란? 

 

책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아이, 자신의 생각이 있는 아이,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로 잘 표현할 수 있는 아이

문제가 있을때 해결을 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있는 아이, 다른사람과 더불어 살아갈 용기와 화합력, 지도력이 있는 아이

로 키우고 싶다. 

 

물론 안다. 부모마음대로 아이가 커지는것은 아니다. 하지만 부모의 의지는 많은 부분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 그런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모든 선택을 할 것이니까 말이다.

 

학군, 학원, 선행,, 모두 좋지만 그리고 그런 혜택을 잘 누리려 하겠지만, 내가 했던 실수를 다시 반복하지는 않을것이다. 왜냐하면 내가 산 증인이니까.

 

새로운 새대는 더 나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하니까.

'엄마의 웃음과 눈물 스토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벽요가 발전기 4/23(금)  (0) 2021.04.23
새벽요가 발전기 4/21  (0) 2021.04.21
아기와 함께 산책  (0) 2021.04.19
분명 내가 안아주었는데.  (0) 2021.04.09
엄마 나를 지켜주세요.  (2) 2021.04.01